10Hz : 죽는 한이 있어도 하겠다는 여성국극,
도대체 뭐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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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 혼자 소리하는 판소리와도 다르고 (다르지)
연기만 하는 연극과도 다르고 (다르지)
춤만 추는 무용하고도 (다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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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검술과 인물
무엇하나 빠지지 않는 우리는 세상의 왕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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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원작을 시작으로 국립창극단 공연에 이어 드라마로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정년이>. 그 배경에는 '여성국극'이라는 화려하고도 감동적인 우리 전통예술이 있다. 주인공 정년이가 어머니 손에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하겠다는 여성국극은 과연 무엇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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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와 다르고, 연극과 무용, 창극과도 다른 여성국극.
1950년대에서 60년대까지 약 10여 년간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린 여성국극은 판소리를 바탕으로 발전한 전통 극예술이다. 창극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으나, 창극은 배역이 혼성으로 구성되어 있고 소리에 더 집중한다. 반면에 여성국극은 소리 외에도 춤, 연기, 무대장치 등 공연성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또 여성공동체로서 오직 여성으로만 배역을 이루어 혼성 창극단의 가부장 권위에서 벗어나기도 했다(신사빈 2017: 703). 이들은 주로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통속극, 이를테면 춘향전이나 호동왕자와 같은 작품을 했고, 화려한 의상과 조명 그리고 무대로 시대상 침체될 수밖에 없었던 문화예술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대중이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흥미와 재미를 이끌 수 있는 요소를 고루 갖추어 대중의 압도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성국극은 1960년대에 급작스럽게 침체의 길로 향하게 되었다. 하루아침에 그 열렬했던 지지가 사그라진 것이다. 그 원인으로는 단체 수와 작품 수가 현저히 줄어들기 시작한 것과 새로운 레퍼토리 개발의 부재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오락물인 영화가 흥행하면서 여성국극은 큰 타격을 입었다. 금전적인 어려움도 피할 수 없었다. 당시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사적 조류에서 여성의 동등한 권리와 인간의로서 존엄성, 자유로운 활동에 대한 목소리가 시작되는 흐름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으로만 구성된 조직으로서 여성국극이 구성되었지만, 여전히 남성 위주의 풍토와 특히 국악인 사회 내 양반 사대부 이상으로 가부장적이고 남성 위주의 권위가 지배적인 상황이었다. 오늘날과 달리 당시에는 돈이 생기는 일에 그리고 기획이나 진행 부분에 여성이 관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일각에서는 사회적으로나 내부적으로나 쇠락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국극을 '전통극과 현대극 사이, 그 어디에도 위치하지 못한 채 쇠퇴한 일종의 비주류 전통 국악연극'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성국극이 가진 의의는 '여성'이라는 측면에서나 '예술단체'로서나 그들로 하여금 생긴 유행 내지는 문화의 부분에서 가치가 크다. 이 가치는 현대에 젠더프리, 드랙이라는 공연예술계 돌풍과도 연결되며 뮤지컬의 역사, 젠더, 아이돌의 연습생 개념과 팬덤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이번 10Hz에서는 여러 가치 중에서도 '젠더'와 '팬덤'에 대해 짧게나마 이야기해 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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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여성국극은 오직 '여성'으로만 구성된 단체이며 배역 또한 여성으로만 이뤄져 있다고 했다. 여성국극단이 올린 작품에는 여성이라는 성별을 가진 캐릭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여성이 남장을 하고 여성 캐릭터와는 상대적으로 대비되는 굵은 목소리와 큰 몸짓으로 남성 캐릭터를 연기했다. 이 점에서 성 고정관념의 탈피를 시도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근래 공연예술계에 화두로 올라 현재는 자리를 잡은 개념이기도 한 '젠더프리'와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인물이나 스토리 자체가 당대 통념적인 관점에서의 이분법적 관념을 탈피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당대 여성들이 바란 이상적인 남성의 이미지를 그리거나 여성 역할과의 대비를 위해 남성상을 더욱 부각시킨 것도 없지 않다. 그러나 필자는 다소 1차원적이긴 하나 성적 고정관념이 부단했던 20세기에 여성이 남성의 역할을 한 것에 가치를 매기고 싶다. 또한 남자역을 맡은 배우와 여성 팬 간의, 여성끼리의 공동체 생활 안에서 동성친밀성 넘어는 동성애적 관계성을 만들기도 했다는 점에서 현대의 젠더, 퀴어와 같은 키워드를 꺼낼 수도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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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소범, 1950년대 국극 웹툰 ‘정년이’ … “배우 김태리를 모델로 그렸어요”,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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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만 아니라 여성국극은 근대화 이후 시대에서 아이돌 팬덤 문화의 시초라고 볼 수도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혹은 최애 아이돌의 사인회를 가거나 굿즈를 사는 등의 행위가 여성국극에서도 있었다. 매우 유명한 일화로 국극 스타 조금앵이 팬의 요청으로 함께 가상 결혼식 사진을 찍었던 것이 있다. 사진관에 가면 여성국극 무대 의상이나 소품이 마련되어 있어 팬들이 입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어떤 팬은 혼담이 오가는 사람에게 자신이 어떤 배우의 팬임을 말하며 다소 과장의 여지가 있으나 원만한 합의 후에 결혼을 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처럼 여성국극의 팬덤과 문화는 실로 대단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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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적, 문화적 측면 외에도 예술적으로 톺아볼 것들 또한 많다. 일례로 기존 판소리의 시김새 등에서 여성국극 특성에 맞는 방식으로 조금씩 변형시키기도 했다는 것이 있다. 아쉽게도 여성국극은 관심의 주변부로부터 밀려나 사회에서 잊혀갔다. 과거 여성국극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고는 하나 이후의 평가는 그리 긍정적이지 못했다. 팬을 제외하고는 여성들 간의 우정과 사랑을 불온하게 보는 시각도 있었다. 이러한 평가는 계속되어 정부의 지원에서도 밀려나기 일쑤였다. 지난 7월 여성국극의 살아있는 역사 조영숙 명인이 세종문화회관 주관 '싱크넥스트24'에서 공연을 하긴 했으나, 이밖에는 그렇다 할 공연이 없다. 현재 소수로 남아있는 여성국극단체 또한 금전적, 인적자원 부족으로 인해 유지가 어려운 상황이다. 필자는 여성국극의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보며, 지금이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근대 문화예술사에 굵은 획인 여성국극이 잊히거나 소외되지 않고 보존이라는 차원 안에서라도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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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후반 여성국극 팬덤의 형성은 오늘날의 팬덤 문화와 깊은 연결성을 지닌다.
당시 팬들은 여성국극 작품들을 단순한 관람이 아닌 배우들의 무대 안팎 모습까지 지지하며, 새로운 형태로 팬덤 문화가 생겼다. 이러한 팬덤의 문화는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배우들을 응원하며, 함께 커뮤니티를 구축했다.
이러한 여성국극 팬덤의 문화는 오늘날 팬덤의 특성과 흡사하다. 특정 스타나 작품에 대한 애정, 적극적인 팬 활동, 커뮤니티를 통한 소통과 연결, 팬과 스타 간의 상호작용은 현재 팬덤 문화의 기본이 되었다. 현재 팬덤은 소셜 미디어와 커뮤니티 플랫폼을 통해 즉각적인 교류로 콘텐츠를 생산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팬덤 문화를 즐기고 있다. 시대에 따라 표현 방식과 플랫폼은 달라졌지만, 팬들이 스타나 작품을 위해 애정을 쏟는 것은 과거 여성국극 팬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여성국극 팬덤은 단순히 관람을 넘어 자신을 표현하고, 배우와 작품의 가치를 공유하는 커뮤니티 문화를 만들어 갔다. 이러한 흐름은 현재의 팬덤이 자신이 지지하는 스타의 메시지에 공감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스타들과 작품에 대한 지지를 표현한 이들의 팬덤 문화는 오늘날 팬덤 문화의 발전과 지속에 중요한 토대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이어져 현대 팬덤 속에서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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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질 듯 이어지고, 사라질 듯 부활하는 '여성국극'의 명맥을 이어나가는 단체가 있다. 여성국극 1세대인 조영숙 명인의 제자 박수빈(사단법인 한국판소리보존회 안산지부 지부장)과 황지영(사단법인 한국판소리보존회 평택지부 지부장)이 2020년 안산에 설립한 '여성국극제작소'는 근대문화예술의 정점을 이룬 여성국극의 명예를 고취하고 현시대와 소통하며 모두에게 공정한 무대를 만들기 위해 출판, 공연, 페스티벌,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2023년에 실연한 <레전드 춘향전>은 여성국극의 1세대부터 3세대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배우들이 함께 참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여성국극의 1•2•3세대 배우들이 함께 무대에 오르며 여성국극인 대통합을 이뤄냈다. 93년생 배우와 93세의 노배우가 여성국극을 향한 열정 하나만으로 작품을 만들어 나갔고, 무대를 통해 전통이 여전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또 지난 10월 27일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 <화인뎐>은 화가 김홍도의 삶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여성국극이라는 장르로 재해석된 공연이다. 여성국극제작소의 공동대표인 박수빈, 황지영이 연출과 작창을 맡고 드라마 <정년이>의 음악감독이자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의 베이시스트 장영규 감독이 음악감독으로 참여하며 공연의 완성도를 더했다.
이렇게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지만, 문화재로 인정받아 정부 지원을 받는 중국의 여성극 / 대중성을 바탕으로 기업 지원을 받는 일본의 여성극과는 다르게 한국의 여성국극은 어떠한 지원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웹툰•드라마 <정년이>의 소재로 여성국극이 부각되며 받게 된 새로운 관심이 여성국극의 명맥을 잇고 대중문화로서의 가치를 알리는 터닝포인트가 되기를 기대하며, 세대를 이어가며 전승하는 이들에게 국가적 지원과 대중들의 꾸준한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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