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를 기반으로 하는 생산방식의 혁신이 거듭되면서 기술 발전의 속도는 날이 갈수록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동시에 기술을 상용화하는 것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방대한 양의 플랫폼이 이를 방증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시대는 디지털로 통합되는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롯이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굳게 믿어온 예술조차도 디지털이 일으키는 바람에 지반이 흔들리고 있으니 말이다.
예술과 기술 그리고 인간에 대한 담론은 마그마가 들끓는 화산처럼 활달하다. 그러면서도 예술과 기술에 초점을 맞춘 지원사업이라거나 콘텐츠는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예술과 기술에 대한 충분한 토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발전하는 기술 사회를 따라가기 급급한 실태라고 꼬집을 수도 있겠다. 박신의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에 대해 '급변하는 과학 기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예술사에서 예술이 기술변화에 어떻게 대응해 왔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예술의 개념, 정의, 범주에 대한 재논의가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통해 기술에 대한 예술의 대응이 갖는 현재적 의미와 담론을 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박신의 2017: 49).'고 표명했다. 필자 또한 이 주장에 강력히 동의한다. 앞서 나가는 기술을 활용하고 권장하기보다 먼저 예술과 기술의 원론적 탐색으로 기반을 단단히 해야 한다고 본다. 덧붙여, 문화산업의 발전과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함이 아닌, 보여주기식의 피상적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도구적 사용은 지양해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비약적으로 변하는 이 시대에서 예술이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해선 기술과의 끊없는 실험이 이뤄져야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기술 트렌드를 생존만을 위한 목적으로 무분별하게 사용해서는 안 되며, 기술에 대한 예술의 대응이 갖는 의미를 찾는 것도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론적 탐색만으론 변화가 잇따르는 시대에 어우러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특히 순수예술, 그중에서도 여전히 진입장벽이 높고 폐쇄적인 국악은 더더욱 그렇다. 이에 필자는 국악X기술에 해당하는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며 예술X기술의 과도기를 유연히 풀어갈 방법을 도출해 보고자 한다. 그것이 설령 이상적일지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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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계는 새로운 기술과 매체에 대응하고자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과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이같은 시도는 비단 지금에 와서만 진행된 것은 아니다. 국악은 현장 중심 음악에서 축음기, CD 플레이어 등의 발명으로 음원화 되어 공급되고 소비되었다. 또 TV,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등을 통해 영상화되었고 이제는 인공지능, 가상현실, 로봇을 활용한 창작이 이어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을 국악에 활용하는 실험은 정부 차원의 지원을 통해 적극 장려되고 있는데, 지방 자치 단체는 물론 국립국악원과 국립극장 같은 국립 예술 기관에서 특히 많이 이뤄지고 있다. 국립국악원은 4년 전 <국악 360° VR>이라는 실감형 콘텐츠를 제작한 바 있고, 국립극장은 한국생산기술원과의 기술 협력으로 '관현악시리즈Ⅳ <부재>'에서 로봇 지휘자 '에버6'를 무대 위로 올리기도 했다. 또, 서울시는 올 7월에 개관하는 서울로봇인공지능과학관의 홍보영상의 일환으로 로봇과 함께하는 디제잉 및 가야금 연주 영상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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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을 활용한 국악 콘텐츠는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절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트렌드를 또 다른 방식의 스펙터클과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성혜인 2022: 137). 즉, 기술을 접목시킨 결괏값이 피상적이어서는 안 된다. 시도는 계속되어야 하지만 보여주기식의 콘텐츠, 콘텐츠의 탁월함 또는 흥행을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 집중해야 한다. 기술X예술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연구가 필요하며 이 연구의 과정과 결과물이 도출되는 진행 단계 전반을 상세히 기록해야 한다. 기술은 데이터가 생명이며, 당연히 기술을 활용하는 예술도 데이터의 중요성을 피해 갈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심층신경망을 이용해 하나의 시나위 악곡을 완성한 <Fanstastic AI Sinawi>는 매우 긍정적이다. 해당 연구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시나위 악보 데이터를 활용해 인공지능을 학습시키고 가상악기로써 각 악기에 적합한 주법을 적용해 새로운 국악 선율을 생성했다. 생성한 선율과 함께 해금 연주자의 즉흥 연주로 '인간과 인공지능의 시나위'를 완성했다. 이들 연구진은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을 국악에 적용함과 동시에 이를 상세히 아카이빙 해 논문과 유튜브 영상으로 기록했다. '시도 – 연구 – 결과물 - 기록' 4박자가 확실히 이뤄진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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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활용한 국악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2020년 이모션웨이브 아츠 주관으로 <국악 메트로니카> 콘서트가 진행되기도 했으며, 진주시립국악관현악단은 제70회 정기연주회에서 故 백대웅, 故 이상규, 故 이준호 작곡가의 곡을 분석해 거장들의 음악 특징이 두드러지는 멜로디를 창작해 냈다. 더욱이 올 6월 국립국악원에서는 AI 음악 전문업체 크리에이티브마인드, 서강대 아트앤테크놀로지학과와 약 1년간 공동으로 기획 및 연구를 진행해 악보로만 존재했던 15세기 궁중음악 '치화평'과 '취풍형'을 복원 및 실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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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는, 예술에도 기술은 필요하다. 실제 연주에 필요한 요소가 기록되지 않은 고음악의 복원에서는 더더욱 실용적이며, 예술적 질료 선택, 실현 등에 있어서도 선택의 가짓수를 넓힐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국악처럼 접근성이 낮고 발전 속도가 더딘 그러나 가능성이 크고 다양한 장르에서는 기회일 수도 있다. AI를 활용해 국악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도 있고 지금처럼 작곡을 통해 새로운 국악을 선보일 수도 있다. 물론 AI로 창작하는 가운데 국악의 느낌이 약하면서도 국악이라고 불리는 모호한 음악이 창작될 수 있고, 전문성이 낮아질 우려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작곡 AI는 대게 구조, 음계 등이 국악과는 다른 서양음악으로 학습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음악도 국악의 특징이 담긴 AI 개발이 별도로 이뤄진다면 이에 대한 문제는 조금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시행착오의 과정에 전문국악인이 아니더라도 다수의 사람이 국악을 쉽게 접하고 다루며 즐길 수 있고, 동시에 소리 데이터와 인적 데이터가 모여 더욱 단단한 기술이 만들어질 전망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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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과 복합이 핵심 가치인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서로 다른 장르를 넘어 서로 다른 분야와 학문이 상호작용하고 연결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관건이다. 국악을 비롯한 모든 예술도 마찬가지다. 예술은 기술과의 융합으로 그 창작 영역을 넓혀가야 한다. 다만, 융합을 통해 콘텐츠를 생성하는 데 있어 새로운 기술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창작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역할로, 전략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신기술과 예술의 연결에 있어 장기간의 연구 및 개발이 토대를 이뤄야 한다.
예술X기술은 이미 현재진행형이다. 기술에 대한 예술의 대응과 그 의미 등을 먼저 찾고 시작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예술X기술 그 진행 과정과 콘텐츠 제작에 기술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몹시 중요하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예술X기술을 함에 있어 촘촘한 연구와 섬세한 기록을 해야 한다. 또 가능하다면, 다수가 이리저리 굴려보고 만져볼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사업일 경우 그 과정을 오픈소스로 공개해 보는 것도 좋겠다.
*참고문헌*
박신의. 2017. "4차 산업혁명과 예술의 미래 - 예술은 기술변화에 어떻게 대응해 왔고, 대응해갈 것인가? -". 문화예술경영학연구, 10(1), 25-53.
성혜인. 2022. "스펙터클의 가능성들: <접신과 흡혼> 리뷰," 오늘의 작곡가 오늘의 작품 2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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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101몽이 말한 것과 같이 예술X기술은 이미 현재진행형이다.
엔터테인먼트에서는 슈퍼 IP+AI+메타버스+팬덤=엔터테크 3.0의 시대며, 지금 우리는 팬들이 스타와 소통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변곡점에 서 있다.라고 류정혜 메타버스 엔터테인먼트 부사장이 말했다.
메타버스 엔터테인먼트에서 시도한 디지털 아이돌 프로젝트 ‘메이브’의 성공 사례가 있으며, 플레이브, 이세계 아이돌 등 버추얼 아이돌들이 등장하면서 음악부터 드라마까지 섭렵했다. 예술과 기술이 결합하면서 우리의 문화의 형태들이 전과 다르게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으며, 예술을 소비하고, 소통하는 방법 또한 변했다. 엔터테크 3.0시대는 IP와 테크 기술이 결합해 새로운 산업을 태동시키고, 문화 콘텐트와 대중의 거리감을 좁혀주는 것이 엔터 테크의 본질적인 역할이라고 한다.
IP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들을 테크 기술로 극복해 대중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기술로 문화 콘텐츠와 대중과의 소통 방식의 변해가고 있으며, 엔터테크 3.0시대에는 공간 역시도 제약과 현실적인 것들을 극복하는 것이 핵심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조성해 갤럭시 코퍼레이션 이사가 말했다.
기술의 발전으로 예술과 결합할 때 저작권 문제 등 윤리적 이슈가 발생한다. 이러한 부분을 기술과 윤리의 균형을 맞추며 엔터테크 3.0시대의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 또한 우리의 숙제라고 생각한다.
몇십 년 뒤, 몇 년 뒤에는 우리가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지금 앉아 있는 자리에서 나만의 스타가 1대 1로 소통하는 날이 정말 가깝게 느껴진다. 우린 그날이 다가오기 전에 기술과 윤리의 균형을 맞추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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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우리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예술 분야에서도 새로운 창작 프로세스로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예술계에서의 이상적인 AI 역할은 창작 과정에 있어 시행착오를 감축시키고, 인간 프로듀서와 협력하는 도구의 개념으로서 작곡가•연주자와 협업하여 최종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역할이다. 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결국 ‘인간’ 프로듀서의 역량이 중요하다. 기술에만 의존하지 않고, 인간만의 감정과 창의성을 얼마나 녹여냈는 가에 대한 척도는 시장 경쟁력을 높이는 새로운 평가의 기준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생성형 AI가 예술계에 들어서면서 저작권에 대한 이슈는 끊임없이 대두되고 있다. 지난 6월 26일, 미국의 주요 음반사들이 음원 저작권을 침해당했다며 AI로 음악을 만드는 생성형 스타트업들을 고소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레코드산업협회(RIAA)는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과 유니버셜 뮤직 그룹, 워너 레코드 등을 대표해 생성형 AI 스타트업인 수노(Suno)와 유디오(Udio)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 스타트업들이 저작권이 있는 음원을 AI에 무단으로 학습시켰다는 이유에서이다.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거쳐 만들어진 자신의 저작물이 딥러닝에 무단으로 사용된다는 것은 분명히 부당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지점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AI 저작권 가이드에서는 ‘AI 저작물의 저작권 등록 기준’, ‘AI 사업자 및 이용자의 책임’, ‘저작권자 권리 보호’에 대한 중요한 지침을 담고 있지만 AI 생성형 음악에 대한 현실적인 징수•분배나 기술적 조치에 관한 실질적인 실행방안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또 중요한 것은, 인간의 창의적 개입 없이 AI에 의해 독립적으로 생성된 산출물은 저작권 보호 대상에서 제외된다.
AI 기술이 촉발한 저작권 문제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제도 안에서 끊임없는 논의와 사례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현재 제시되는 저작권법은 ‘결과물’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원저작권에 대한 고려가 결여되었지만, 원저작권자들에게 합리적이고 실제적인 법과 제도가 만들어진다면 긍적적인 인식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생성형 AI는 뜨거운 여론 위에서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편리하고 실용적인 AI가 지혜롭고 현명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부디 ‘과정’에 주목한 신중한 논의를 통해 모두에게 이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되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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