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Hz]
________________ 자몽살구클럽,
읽히는 음악과 들리는 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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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은 분명 바뀌었다. '좋은 노래를 한 번 듣고 끝'인 경우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다시 돌아와 확인하고 싶은 감각'이 작품의 힘을 가르는 기준이 됐다. 이를 위해 뮤직비디오와 숏폼은 기본이고, 팝업이나 전시, 웹툰과 소설까지 이어지는 흐름도 흔해졌다. 다만 확장이 늘수록 부작용도 같이 늘었다. 콘텐츠가 많아질수록 핵심이 선명해지기도 했지만, 반대로 "왜 이걸 봐야 하지?"라는 피로가 쌓이기도 했다. 그래서 평가 기준은 단순해졌다. 무엇을 더 붙였는지가 아니라, 그 확장이 작품에 꼭 필요했는지가 중요해졌다.
한로로의 〈자몽살구클럽〉은 이 질문을 비교적 깔끔하게 정리한 프로젝트였다. 소설 〈자몽살구클럽〉이 출간되고, 이후 동명의 EP를 발매하며 하나의 작품으로 연결되는 형태였다는 점에서 출발부터 크로스미디어를 단순한 홍보 수단으로 다루지 않았다고 보였다. 그리고 소설 〈자몽살구클럽〉은 제12회 교보문고 출판 어워즈에서 '올해의 콘텐츠'를 수상했다. 크로스미디어가 과잉 포장으로 피로를 만드는 시대에 〈자몽살구클럽〉은, 확장은 장식이 아니라 필연일 때만 남는다는 것을 증명해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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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로로의 성장에는 특유의 속도가 있다. 급가속보다 완만한 상승에 가까웠고, 폭발보다 꾸준한 축적에 가까웠다. 한로로의 언어는 감정을 단정하지 않고, 자주 흔들린 채로 남겨둔다. 그 흔들림이 곧 동시대 청춘의 체감과 맞닿아 있고, 팬덤 역시 단순히 가수를 좋아하는 층을 넘어 한로로의 문장과 장면을 공유하는 층으로 굳어졌다고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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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몽살구클럽〉은 이런 동시대성을 더 긴 호흡으로 풀어낸다. 이 프로젝트는 '세계관을 만들기 위해 음악을 붙였다'기보다, 음악만으로는 담기 어려운 이야기가 있었고 그 이야기를 담기 위해 매체를 나눴다는 인상이 더 강했다. 실제로 작품 소개에서는 "앨범 길이(약 20분 내외)로는 담기 어려워 소설이 필요했다"는 취지의 설명이 반복됐다. 문장으로 먼저 세계가 만들어지고, 그 세계가 음악으로 울리는 구조가 잡혀 있었기에 다른 매체로 옮겨갈 때도 억지로 덧칠하지 않았다. 확장은 새로운 걸 붙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것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에 가까웠고, 크로스미디어를 이벤트가 아니라 표현 방식으로 보이게 하면서 결과적으로 프로젝트 전체의 설득력을 높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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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줄기는 비교적 명확했다. 죽고 싶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내일을 살아가고 싶은 네 명의 학생, 소하·태수·유민·보현이 등장했고 이들은 각자의 사정 속에서 벼랑 끝에 가까운 상태를 지나고 있었다. 이들이 '자몽살구클럽'이라는 모임을 통해 서로를 붙잡아가는 과정이 주요 서사였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사건의 자극성이 아니었다. 오히려 소설은 "살아가야 한다"를 크게 외치기보다,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데 더 가까웠다. 관계를 맺는 방식, 말을 꺼내는 순서, 서로를 지키는 현실적인 방법 같은 것들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었고, 구원 서사의 달콤함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타인과 관계를 다시 배우는 과정을 그려나갔다.
이 구조는 크로스미디어와 맞물릴 때 더 잘 작동했다. 책이 음악을 해설하지 않고, 음악도 책을 요약하지 않는다. 대신 둘은 서로의 빈 곳을 채우는 관계에 가까웠다. 읽고 나서 다시 들으면, 이전에는 스쳐 지나가던 멜로디가 장면의 온도를 입는다. 반대로 듣고 나서 읽으면, 노래가 남겨둔 여백이 문장으로 채워진다. 감상이 '직선'이 아니라 '왕복'이 되는 순간, 콘텐츠는 소비 대상이 아니라 관계의 대상으로 바뀐다. 크로스미디어의 이상적인 형태가 있다면, 바로 이런 '왕복 가능한 감상'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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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은 이미 크로스미디어의 대표적인 실험장이다. 다만 이 흐름이 커질수록 대중의 반응도 더 냉정해졌다. 콘텐츠가 많은 게 장점이 되려면, 각 콘텐츠가 새 정보를 제공하거나 다른 감각을 만들어야 했다. 대중이 피로를 느끼는 패턴은 의외로 단순했다. 콘텐츠는 많은데 말이 반복되거나, 연결은 화려한데 음악과 따로 놀면 조립된 느낌이 강해졌다. 반대로 반응이 좋아지는 조건도 단순했다. 매체가 바뀌었을 때 실제로 얻는 게 있어야 했다. 예를 들어 음악에서 다 말하지 않은 감정을 책이 보강하거나, 책에서 길게 쌓인 장면을 음악이 한 번에 압축해주는 식의 역할 분담이 필요했다. 이 역할 분담이 없으면 크로스미디어는 그저 '과제'가 되기 쉬웠다.
〈자몽살구클럽〉이 의미 있었던 이유는 이 조건을 충족했기 때문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소설과 EP가 서로의 설명서가 되지 않았고, 대신 서로 다른 매체가 다른 기능을 맡는 형태를 만들었다. 그리고 출판 어워즈에서 '올해의 콘텐츠'로 수상됐다는 사실은, 이 프로젝트가 음악 팬덤 내부의 반응만으로 굴러간 것이 아니라 출판/유통 현장에서도 하나의 콘텐츠로 판단될 만큼 완성도를 인정받았다는 신호가 됐다. 여기서 중요한 건 "상 하나 받았다"가 아니라, 크로스미디어가 팬덤 마케팅을 넘어 시장 전반에서 통용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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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미디어가 제대로 작동했을 때 기대효과는 감성적인 표현보다 실무적인 변화로 정리하는 편이 명확하다.
첫째는 콘텐츠 수명이 길어진다는 점이다. 음원은 짧고, 앨범도 길어야 수십 분이다. 하지만 소설은 읽는 시간이 길고, 소설과 음악이 연결되면 감상 시간이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된다. 작품이 차지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재생과 재구매 가능성도 올라가고, 결과적으로 작품은 오래 남아있을 것이다.
둘째는 유입 경로가 넓어진다는 점이다. 음악으로 들어온 사람이 책으로 이동하고, 책으로 들어온 사람이 음악으로 이동한다. 이 교차 유입은 광고보다 강하게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취향이 다른 집단이 같은 작품을 각자 다른 이유로 받아들이면, 프로젝트의 수명은 더 길어진다. 특히 '책을 읽는 층'과 '음악을 듣는 층'이 겹치기 시작하면, 작품은 단순 유행이 아니라 취향 기반 콘텐츠로 자리잡기 쉽다.
셋째는 팬덤의 형태가 바뀐다는 점이다. 크로스미디어가 성공하면 팬은 단순히 소비자가 아니라 해석자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장면이 이 트랙과 연결된다" 같은 이야기들이 커뮤니티에서 돌기 시작하고, 그 해석이 또 다른 재생과 재독을 만든다. 작품이 커지는 방식이 단순 공유가 아니라, 해석의 축적으로 바뀌는 순간일 것이다.
넷째는 창작자에게 표현 도구가 늘어난다는 점이다. 어떤 이야기는 노래만으로는 너무 빠르게 지나가고, 글만으로는 너무 무겁게 남는다. 두 매체를 같이 쓰면 전달이 더 정확해진다. 〈자몽살구클럽〉의 경우도 앨범만으로 담기 어려운 내용을 소설로 풀어내는 방식이 핵심 구조로 제시됐고, 그 구조가 프로젝트 전체의 납득 가능한 이유가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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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위험도 분명했다. 매체가 늘면 중심이 흐려지기 쉬웠고, 연결이 과하면 억지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결론은 단순했다. 크로스미디어는 '크게'가 아니라 '정확하게' 해야 한다. 앞으로 더 많은 아티스트가 '세계'를 만들겠지만, 오래 살아남는 세계는 많이 '확장된 세계'가 아니라 '다시 돌아가고 싶은 세계'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 한로로는, 그 '재방문'을 설계할 줄 아는 창작자에 가깝다. 크로스미디어가 유행이 아니라 실력의 영역이 된 시점에서, 이 프로젝트는 한 번의 실험이라기보다 하나의 기준이라고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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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미디어를 유행이나 확장 전략이 아니라 '필요의 문제'로 되돌려 놓는 시선이 인상적이다. 무엇을 더했는지가 아니라 왜 그것이 있어야 했는지를 묻는 태도는, 콘텐츠 과잉에 피로해진 지금의 환경을 정확히 짚는다. 〈자몽살구클럽〉을 세계관 마케팅의 성공 사례로 소비하지 않고, 음악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있었기에 매체가 나뉘었다는 구조로 해석한 점도 설득력이 있다. 특히 소설과 EP가 서로를 해설하지 않고 각자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지점은 감상을 개별 콘텐츠에 대한 일직선의 소비에서 '왕복 소비'로 전환시킨다. 결국 크로스미디어의 성패는 얼마나 크게 확장했는지가 아니라, 그 확장이 작품 안에서 얼마나 정확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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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미디어를 단순한 확장이나 장식이 아닌 필연적인 표현 방식으로 설계했다는 점이 인상 깊다. 필자가 말한 "확장은 장식이 아니라 필연일 때만 남는다"는 문장은 이 프로젝트를 설명한다. 새로운 것을 덧붙이기보다 이미 존재하던 서사와 감정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크로스미디어를 단순 이벤트가 아닌 하나의 표현 방식으로 기능하게 함으로써 프로젝트 전체의 설득력과 완성도를 높였다. 이러한 부분은 팬덤 내부 소비에 머무르지 않고 출판과 유통 시장까지 확장된 반응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크로스미디어가 효과적인 콘텐츠 전략이자 지속 가능한 브랜딩 방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향후 문화예술 콘텐츠 전반에서 크로스미디어가 어떤 방식으로 확장·활용될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능성을 다시 한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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